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중 영국 대사관 점령 사건 (문단 편집) === 저우언라이의 분노 === 다른 나라도 아니고 영국과 같은 강대국 대사관을 습격해 불태워버리고 영국 대사 도널드 홉슨을 포함한 외교관들까지 마구 구타해버린 사건에 저우언라이는 멘탈이 나가버렸다. 8월 22일 심야, 저우언라이는 즉각 베이징 수비대 장교들과 외교부 관리, 홍위병 대표들을 불러 영국 대사관 점령 사건 브리핑에 참석하게 했다. 분노한 저우언라이는 홍위병들이 무책임했다고 질타한 후 외교부 관리들에게 학생들을 설득하지 못한 책임을 물으며 조금이라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외교 공관 침범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또 외교관의 개인적 안전이 주재국에 책임이 있다는 걸 알 거라고 발언했으며 홍콩 사무실이 섣불리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비판했다. 8월 23일, 저우언라이는 상하이에 머물고 있던 [[마오쩌둥]]에게 왕리가 그간 해온 급진적인 연설문을 보내 왕리가 이 사건을 부추겼다고 지목했다. 예상 밖의 상황에 역시나 경악한 마오쩌둥은 보고를 듣는 내내 담배를 피우더니 인민해방군 참모총장 대리 [[양청우]]에게 "청우야! 자네 피곤하겠다. 먼저 돌아가 쉬어라! 내가 자료를 살펴보고 숙고해보겠다. 일이 있으면 자네를 부르겠다."고 하였다. 자료를 살펴본 마오쩌둥은 양청우를 다시 불러 베이징에 돌아갈 수 있는 비행기편을 알아보게 한 다음, 다음과 같은 명령을 구두로 전달했다. >"왕리, 관펑, 치번위는 문화대혁명을 파괴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다. 자네는 총리 한 사람에게 총리가 책임을 지고 그들을 체포해 보고하라. 자네는 돌아가 이렇게 총리에게 즉시 처리하도록 하라. (...) 고려할 것이 있다. 치번위는 잠시 놔두고 자아비판을 시키도록 하라. 8월 23일 정오, 베이징에 도착한 양청우는 조어대에 달려가 저우언라이에게 마오쩌둥의 명령을 전달했고 저우언라이는 그날 심야 저우언라이는 천보다, 캉성, 장칭 등을 불러모아 비밀 회의를 소집했다. 11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저우언라이는 먼저 이 회의가 주석의 중요 결정을 전달하는 회의라고 말한 후 왕리와 관펑을 체포하라는 마오의 지시를 낭독했다. 그리고 저우언라이는 왕리와 그 가족 전부가 한 무더기의 흑방 쓰레기라고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왕리와 관펑은 신속하게 체포되었으며 체포가 잠시 유보되었던 치번위도 6개월 뒤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반혁명 행위로 기소되어 격리 심사를 받았다. 조사 결과, 이들은 국민당과 소련에 충성하여 간첩행위를 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마오쩌둥은 격노하여 왕리가 대독초라고 비난했고 극단주의자들을 색출하라고 지시했다. 문혁소조원 중 역시나 극좌파였던 무신과 린제 역시 좌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